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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덥잖은 나의 이야기- 학교와, 학교 바깥에서 배운 것들.
기대를 안고 들어간 대학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술 마시고 떠들썩한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솔직히 일련의 과행사들- 신입생OT, 새터, 개강파티, 대면식 모두 재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엄격해보였던 수직적인 분위기에 위축되었지만 다들 어찌어찌 적응해나가고 있었고, 내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하며 지냈다.
수업 역시도 몹시 실망스러웠는데, 대학에 가면 전부 토론식 수업을 할 줄 알았더니 (그렇다고 내가 토론을 잘하는 건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6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강의실에서 같은 수업을 들어야했다. 내용도 방식도 고등학교 때와 별 차이점을 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무난하게 그럭저럭 해내갔다. 하지만 무엇인가 빠진 느낌. 항상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느낌. 내가 상상했던 대학생활은 좀 더 활력이 넘치고, 엄청난 내적성장을 이룰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는데. 수업에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아무런 의미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가 정착한 곳이 자원활동 동아리였다. 화려해보이는 대외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차근차근, ‘봉사활동부터 해보자’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다. 어쩐지 좀 특이한 곳이었는데 기관에서 시간을 채우면 되는 활동이 아니라 운영을 거의 자체적으로 해나갔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동아리'의 성격도 강했던 거다. 예산만 지원을 받고 홍보, 모집, 프로그램 기획, 활동진행과 평가 전부 우리 몫이였다. 그렇기에 구성원의 가치관에 따라 운영방식이 이리저리 바뀌기도 했다. 선배들이, 교수님과 같은 사람들이 결정하면 따르는게 아니라 모든 사항은 전부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다. 때때로가 아니라 자주, 회의는 늘어졌다. 그런 방식이 답답해서 사람들이 많이 나가기도 했다. 불편하긴 했지만 무리에서 자기주장을 할 기회가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기도 하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도 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줄어들었다. 자발적인 참여없이는 굴러갈 수가 없는 단체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사람들끼리는 동료의식이 생겼다. 한 학기, 두 학기정도 하다보니 무슨 직책을 맡고 있었다. 비록 돈도 없고 명예도 없는 직책이었지만 정말이지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 어떤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책임감. 사람들에게 열정으로 인정을 받는 기분. 항상 주변에 물러서 있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새로운 면을 많이 보았고, 예전보다 나를 조금씩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학교 밖에서 나는 성장한 것이다.
교육과 자치활동
작은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일을 하는 것. 그 경험이 나는 참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를 낯설게 하는 동시에 미리 세상과 소통하는 경험이 되었다. 사람들마다 정의는 다르겠지만 성장이란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와 관계맺고 있는 세상이 어떤 공간인지 이해하는 과정이 교육의 의미가 아닐까? 교육을 통해서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리고 세계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 이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면 그것을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교육은 때로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한다. 강의실 안에서 배우는 지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강의실 밖에서 관계맺기를 통해 지식을 실현하는 것 역시도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우리는 전자를 열심히 행하고 있다. 들어야할 학점은 많고, 학점은 중요하기 때문이다.(특히 취업에!) 그러나 대학생이 후자를 접할 기회는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가. 주체가 되는 활동을 통해 사람을 느끼고 공동체를 느끼는 일. 그것은 자치활동이 아니면 어려운 부분이다. 대학이 12년 동안 다녔던 학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이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늘어난 것.
줄어드는 공간. 그리고 자치권
그러나 다시 한 번 되물어봐도 학교에서 이런 활동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활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썼지만 과활동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교수님과 선배의 권한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만들어가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와는 좀 맞지 않았을 뿐..) 과활동, 동아리활동, 학생회 등 자치활동 전반이 위축되어가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 학회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작년에 벌어졌던 일련의 자치(활동)권 침해상황은 현재의 열악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에코캠퍼스 명목으로 주점이 금지되었으며, 축제를 할 교비가 지급되지 않았고 학교 측에서 학보에 선거관련 내용을 싣지 못하게 했다. 줄어드는 자치권, 자치활동의 중심에는 공간부족의 문제가 있다. 학교에 우리를 위한 공간이 얼마나 있는가? 과방과 동방이 있지만 그곳이 충분히 사람들을 수용되지는 못한다. 과방도, 동방도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돈을 내야하는 카페로 간다. 학교는 매일 새로운 건물을 쌓아올리지만 저곳이 진짜 우리를 위한 공간인가? ‘오바마홀’이 있는, 작년에 신축한 지하캠퍼스에서 학생을 위해 개방하는 공간이 얼마나 되는가?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또 어떤 목소리를 낼 것인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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