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은 친한 언니가 기르던 토끼 이름이다. ------------------------------------2015.10.18 호랑호랑이라는 이름의 토끼가 있었다. 호랑은 한쪽 눈에 아주 큰 점이 있다. 점이 얼마나 큰지 사진으로 봤을때 그게 눈이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호랑은 예쁘지만 다소 까탈스러웠다고 한다. 호랑을 처음 봤을 때는 내가 스무살인가 스물 한 살인가 술 마시고 처음으로 외박했을 때였다. 그때가 2011년 쯤이였고 호랑은 2016년 3월에 죽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강아지를 1년 키우다가 다른 집에 보내야했던 적이 있다. 이름이 초롱이였는데 초롱이를 보내는 차 안에서 아주 많이 울었다. 한동안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울었는데 사실은 지금은 아주 울고 싶은 기분의 흔적만 남아..
갓밴드의 갓갓커버 ㅜㅜ Belligerent ghoulsrun Manchester schoolsspineless swinescemented mindsSir leads the troopsjealous of youthsame old suit since 1962he does the military two-stepdown the nape of my neckI wanna go homeI don't want to staygive up educationas a bad mistakemid-week on the playing fieldsSir thwacks you on the kneesknees you in the groinelbow in the facebruises bigger than dinner platesI wa..
개강하고 정신없이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다. 벌써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한두 과목 빼고 중간고사는 치지 않는다. 노트테이킹이 어렵다. 나 빼고 다들 실력이 쑥쑥 오르는 것 같다. 때때로 자괴감도 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데 생각보다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남 앞에서 얘기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인데 이만큼 온 것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별로 도움은 안되겠지만 아직 고생을 덜한 것 같다. 통역이 너무 재밌고 좋아죽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더 잘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으면 시간 낭비도 줄이고 더 열심히 해야되는데 거기까지는 잘 안됨;; 돌이켜보면 입시때 너무 편하게 공부한 것 같다. 딱 재수하지 않을 정도로만 했다. 대체로 모든 일을 망하지 않을 정도..
처음 확인하고 나서 안 믿어져서 화면 캡쳐도 수십 번 하고 합격 통지서도 저장해놓았다. 여기 저기 연락 돌리고 친구랑 밥 먹고 못 잤던 잠 자느라고 바빴다. 감사하게도 같이 스터디 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붙었다. 시험 쳤던 학교 중에 제일 가고 싶었던 곳에 붙어서 정말 행복하다. 내 목표는 재수를 피하는 것이였기 때문에...그렇지만 막상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대를 하게 돼서 힘들었다. 20일에 마지막 학교 시험치고 요 며칠동안 새벽 네 시에 잠들었는데 (시험 치기 직전보다 훨씬 초조하고 죽을 것 같았다). 어쨌든 붙었으므로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하느님께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기쁜 마음이 드는 동시에 걱정도 많이 되고 그런데 특히나 이대는 유급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게 ..
11/2여기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아직 시험이 다 안 끝났다. 사실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올해 겪었던 일들을 다 끝난 것 처럼 털어놓을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그런 것은 나중에, 모든 것이 정해진 다음에 편한 마음으로 하고 싶다. 물론 시험이 끝나면 이런 마음이 싹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10대 때는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140자 이상으로 글을 못쓰는 병에 걸렸다. (트위터 때문이다.) 한때는 뭔가를 꾸준히 기록하기도 했고, 이 블로그에도 몇 가지 의미있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원래 예전에 썼던 거의 모든 글은 쓰레기 같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놀랍게도... 그렇지 않은 글들도 있었다. 가끔 들어와서 옛날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생산적인 ..
1. 이름에 'edible'이 들어가는 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2. 그곳에 있는 바텐더 '조'는 좋은 사람이다. 나는 끝끝내 그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했지만 그는 무심한 듯 상냥한 사람이었다. 내 생일에 생일 모히또를 만들어줬다. 그날 끝내 친해지지 못한 사람들도 (왠지 유별나게) 내 생일을 축하해줘서 고마웠다. 그날 무슨 샐러드를 얹은 피자를 혼자서 다 먹고 모히또를 세 잔이나 얻어마셨다. 공연 온 사람이 라디오 헤드 노래를 재즈 풍으로 불렀다. 중간에 나를 가리키면서 오늘 생일인 사람 축하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다. 밀리도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생일인 나를 위한 노래라고 했다....그날 세치와 현정과 연주가 웃긴 사진을 보냈고 나는 집에 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즐거웠다. ..
"So let me cry over boys more than I speak.Let me fulfill your diversity quota.Just one more brown girl mourning her white hero. No wonder Harry Potter’s got yellow fever.We giggle behind small hands and “no speak Engrish.”What else could a man see in me?What else could I be but what you made me?Subordinate. Submissive. Subplot." 나는 말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울기만 하지"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날 머릿수로 채워넣어 백인 소년 주인공을 잃고 슬퍼하..
낮에 교수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치학을 가르치던 분이셨고, 강의도 잘 하시지만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셨다. 정치 참여를 해서 바뀌는 게 없다고들 하지만 바뀌는 건 우리라고, 정치를 통해서 개개인이 제대로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직접 불을 밝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도울 수는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벌써 4년도 더 되어서 흐릿하지만 여튼 그렇다. 나는 한 번도 운동권이였던 적은 없지만 그때 자원활동이나 생활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나름의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을 할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건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마지막에 만났을 때는 칭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