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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

캄보디아 다녀왔을 때 기록

엔키ㅋ 2013. 2. 13. 23:55

... 하지만 다른 어떤 것들이 회의적이었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아름다운 나라에 와서 순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여태까지 누렸던 모든 것들이 감사합니다. 어꾼 

어떤 거대한 담론보다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 거창한 것들을 너무 자주 논하지는 말자. 


오전에 학교로 향할 때 멍때리며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던, 청량하게 아름다운 하늘,  

해 뜰 무렵과  질 무렵의 수채화 같은 구름들, 별똥별, 수 십 킬로미터 밖의 번개(그날 참 신기했다.) 

오전 일정 끝나고 밥 먹고나서 천막을 올려다볼 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이름을 잘 기억할 수 없었던 열대과일들 ,

붉은 황토, 묘비들 위로 피어올랐던 한 낮의 나뭇가지들, 연꽃, 야시장 그리고 앙코르와트 

아, 노력봉사 중간에 마셨던 코피코 커피도. 

그리고 그 땅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 아이들. 


내가 캄보디아에 다시 와서 정말 다행인 것은 (2년 전쯤 패키지 여행으로 이미 한 번 왔었다.) , 원달러를 외치던 아이들을 

마지막으로 기억하지 않을 수 있어서.  관광일정을 마쳤을 때쯤(정확히 2년전과 같은 코스였다. 앙코르와트,민속촌,발마사

지, 야시장)나는 아이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눈빛과 그렇지 않은 눈빛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어디를 가든 축쏜나, 멈짱리, 쯔뽀아모리, 로안싸렌, 소찌아, 라이팔라, 스퍼이잔나, 러이라뜨나, 헤이차이나, 컷, 카웁, 

턴쓰레이라으, 룻멈, 헝서찌엔, 참쏘지앗, 헤역 그리고 또 누구지... 여튼 너희 같은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참 위안이 된다. 


어떤 연유에서든 인연은 참 소중하다. 너희는 참 소중하다. 

나를 '네악크루(선생님)'이라고 불러줬으니까. 참쏘지앗에게 서툰 크메르어로 내일 너를 보고 싶어, 내일 학교에 와줘라고 

했는데 정말 와주었던 기억이난다. 

앞으로 다시 만날 일, 연락이 닿을 일 조차- 아마도 없겠지만,  이 세상 어딘가를 여행하면서 어떤 아이들을 만났을 때 

너희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너희의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 

배고픈 너희들에게 빵을 나눠줘서 빵을 구걸하게  하는 일이 아닌,

미약한 힘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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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7월 중순쯤 다녀오고 아마 8월 초쯤 쓰여진 글일 것이다. 오글거려서 내가 수정한 부분도 있다. 

쓰다가 감정에 몰입이 됐는지 감상적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으니 좋다.. 여름으로 돌아간 기분. 

이런 얘기를 수기에 썼어야 했는데, 왜 수기에는 지속적인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둥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안 가질만

한 어려운 얘기를 썼을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덕분에 도움을 주려고 온 우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고 갔습니다.' 투의 글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동정의 대상으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 '정도로만' 소비되는 게 싫었다.  

왜냐, 사실 우리가 아이들의 진짜 인생에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기에 아이들은 영원히 타자이다. 봉사

자들의 감상 속에서만 추억되고 회자되다가 결국 잊혀질 것이다. 

요컨대 나는 무언가 숭고한 일을 하려는 것 처럼 현지에 들어갔다가 실질적으로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고 (혹은 오히려 해를

끼치고) 돌아오고나서는 그 때 우리 정말 힘들었어. 그 아이들 정말 불쌍했어, 정도의 논의로 업적을 마무리짓는 해외봉사의 

단상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말았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 활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나에게 봉사를 후원해준 단체와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들의 노력을 폄하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사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물론 신청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는 책이 (단기)해외봉사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던 것 같다. 떠나기 전에 교수님과 조금 이야기하기도 했고., 

나는 회의감을 느낄 것을 알면서도 참여한 셈이다.  

구체적인 경험들은 다르게 다가왔지만, 어쩐지 정답을 미리 알고 시험에 임하는 사람의 기분이였다. 그것도 나 혼자서!

다들 즐거웠다. 보람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혼자서만 비뚤어진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이런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같이 입 밖으로 꺼내면 위험해지는 물음들. 

'학교 시스템이 제대로 안되어 있고, 책도 없고 선생님도 없는데 도서관을 짓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같은.

사실은 답을 알고 있었던 물음들. 나는 아는체 하고 싶었다.


..그 때의 내가 이해가 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애초에 '단기봉사'라는 틀 안에서는 개발이라든지 빈곤이라든지 어떤 뚜렷한 문제의식을 갖기 어렵다.  함께했던 사람

들도 그런 목적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지구촌사랑', '이웃사랑' 정도의 관념을 전파하는 것으로 충분했던 활동

었다. (+기업이미지 재고) 그리고 그렇게 프로그램화 되었고..

그럼에도 내가 10일 남짓한 단기봉사를 떠났던 이유는, 첫번째로 스스로 그렇게 뚜렷한 문제의식(개발에 관한)을 필요로 

하는 지 몰랐고 두번째로, 운좋게도 공짜로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설령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밑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은 어땠을까.  우리가 와서 행복했을까. 

 다른 어떤 것들이 회의적이었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기억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바란다.

 지금도 아이들이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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